구례 화엄사
천년의 화엄성지 화엄사
지리산이 품은 사찰중 국보급 문화재를 가장 많이 간직한 화엄사.
화엄사의 연혁에 대한 공부를 해본다.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 스님이신 연기조사께서 대웅상적광전과 해회당을 짓고 화엄사를 창건 후,
백제법왕(599)때 3천여 명의 스님들이 계시면서 화엄사상을 백제 땅에 꽃피웠다.
신라시대는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시고 4사자 3층 사리석탑과 공양탑을 세우셨다.
원효성사는 해회당에서 화랑도들에게 화엄사상을 가르쳐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고려시대 도선국사비를 건립하고 중수와 보수를 거쳐
조선시대 임진왜란때 가등청정은 구례 석주관에서 승병 300병이 왜구에 맞써 싸웠다는 이유로 화엄사를 전소시킨다.
그후 중건과 더불어 숙종(1699~1703)때 국내 목조건물중 최대규묘인 각황전을 건립하게된다.
화대종주 시발점 화엄사.
금강문을 지나 천황문으로.
화엄사 각황전.
화엄사 각황전 - 국보 67호.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 국보 12호.
석등과 석등을 닮은 소나무.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 국보 35호.
석등아래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가 사사자삼층석탑 아래의 연기조사 어머님께 차를 올리고 있다.
어머님께 무릅을 꿇고 차를 올리는 연기조사.
화엄사 대웅전뒤를 오르면 만나는 구층암 - 암자 치고는 지저분한 느낌이 들었는데 현재 다실로 쓰인다고 한다.
모과나무 기둥.
生모과 나무와 死모과 나무.
모과나무 기둥.
구층암의 복원하지 못한 삼층석탑.